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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이상한 사람들

저스틴은 가끔 병동 화장실에 수건이나 다른 물건을 넣어 변기를 막히게 해서 아래층 모든 병동 화장실의 변기 물 또한 불통하게 만든다. 남이 안 보는 사이에문손잡이를 정성껏 핥기도 하고 다른 이상한 짓도 곧잘 한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차림새가 깔끔한 40대 백인. 저 자신은 유머 감각이 전혀 없지만 남이 우스갯말을 하면 어설프게 웃는다. 늘 고개를 푹 숙인 자세. 내가 말을 걸면 짤막하게 대답한다.   저스틴은 남들을 상대하기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70대 홀어머니가 병동으로 전화해도 되도록 통화를 피하다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말 몇 마디 후에 전화를 끊는다.   자폐 스펙트럼 중에서 정도가 심한 영역에 속하지만 얼굴이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저스틴과 운 좋게 긴 대화를 나눴다. 병동 변기가 막혀서 사람들이 쩔쩔매면 기분이 좋으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러는 거지? 저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어쩔 수 없는 힘으로 그런다는 답변.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2022년 여름,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traordinary Lawyer Woo’ 연속극을 본다. 그녀는 IQ 164의 자폐증 장애인. 정상인들이 밥 먹듯이 하는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특정 문장을 거듭 되풀이하고, 남의 말을 즉석에서 흉내 내듯 따라 하는 버릇(반향어, 反響語, Echolaria, 메아리증) 같은 증세가 있다.   그녀는 자기 이름 우영우가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처럼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발음이 같다고 즐겁게 소개한다. 영어 번역을 어찌 하나 궁금했는데 직역 대신에 ‘kayak, deed, rotator, noon, racecar’로 옮겨 놓았네. 재미있다.   저스틴도 우영우도 거짓말을 못 한다. 저스틴은 수줍어하고 비밀스럽고 언어적 표현능력이 없지만, 우영우는 거침없이 유창한 언변이 직설적이다. 학창시절 별칭은 ‘우당탕탕우영우’.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우당퉁탕’. 우연히도 글자 하나 빼놓고 같은 호칭이다. 법정에서 막무가내로 거칠고 사나운 우영우!   키 크고 잘 생긴 같은 회사 총무팀 직원에게 우영우는 말한다. “제가 이준호씨를 한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자기가 그를 좋아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이유다. 이런 질문도 던진다. “키스할 때 원래 이렇게 이빨이 부딪힙니까?” 남자는 학구적인 설명을 부여한다. 친절하게.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에 몰두한 우당탕탕 이영우는 권모술수라는 별명을 가진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진실이 뭔가 확인해야 합니다.” - “아니 그럼, 우영우 변호사는 확인해요.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정상인이 비정상인과의 공감을 거부하는 장면이 서글프다.   ‘spectrum’은 빛띠, 범위, 영역이라는 말. 스펙트럼은 ‘specter(유령)’와 어원이 같다. 이상도 해라. ‘spectacle, 구경거리, 안경’도 뿌리를 같이한다. 전인도 유럽어로 ‘보다, 관찰하다’. 빛도 유령도 다 당신과 내가 안경까지 쓰고 유심히 보고 싶어하는 구경거리다. 무지개를 바라보듯.   우영우는 말한다. “사람들이 나와 너가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사는데 더 익숙합니다.” 그녀도 저스틴도 거짓되고 부자연스러운 정상인들과 마음껏 어울려 살기가 힘이 들 텐데. 그들이 애써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애절하다. 남들이 보기에 나도 좀 그럴까.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병동 변기가 병동 화장실 자폐증 장애인

2022-08-09

[전문가 칼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인격)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인격은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리처드는 자칭 멋진 남자 ‘알파 메일(Alpha Male)’이다. 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 풍토와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머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헤이”하고 소리치면 금세 “I am sorry”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머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해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대니얼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브루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달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지옥이나 가라!(Go to hell!)”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브루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도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곤 한다.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은 원래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전문가 칼럼 비정상 정상 병동 화장실 병동 복도 엊그제 병동

2022-01-25

[잠망경] 정상, 비정상, Crazy?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문화)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문화는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너끈히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한 당원(黨員)이 정치적 뗑깡을 부리면 당 전체가 고통을 받는 이치와 비슷하다. ‘Ethos’가 망가진 상태!   리차드는 자칭 ‘알파 메일’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풍토하고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마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Hey!” 하고 일갈하면 금세 “I am sorry!” 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마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하면서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부르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딸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푸짐하게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Go to hell!” 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 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 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 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부르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는 사실 또한.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l’은 워낙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비정상 crazy 정상 비정상 병동 화장실 병동 복도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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